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1차 상하이 사변 (문단 편집) === 일본 외무성의 침략호응 === 사변 발생에서 조금 거슬러 올라간, 1932년 1월 12일 일본공사 시게미쓰 마모루가 상하이를 출발하여 1월 15일 도쿄에 도착했다. 시게미쓰는 외무성 간부에게 상하이의 사태가 심상치 않으며 만약 상하이에서 새로운 사태가 일어난다면 그것은 단지 일본과 중국간의 문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의 국제적 지위를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을 지적했다. 이에 대해 아시아 국장 등 외무성 간부들도 동의했다. 1월 25일 요시자와 켄키치 외상은 "모두 당신의 의견에 동감하므로 하루라도 빨리 상하이로 돌아가서 사건의 처리에 힘쓰고 사태가 악화되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시게미쓰는 29일 고베를 출발하였다. 하지만 이때는 이미 일본 해군 육전대의 공격이 시작된 후였다. 1월 30일 나가사키에 기항한 시게미쓰는 사변 발생을 알게 되었고 31일 상하이에 도착했다. 사태를 조사한 시게미쓰는 2월 2일 요시자와 외상에게 62호, 63호 전보를 쳐서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28일 중국측이 우리 총영사의 요구 조항을 모두 승락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거류민의 주요한 단체인 시국위원회는 여기에 대해 절대 반대하였다. 즉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치게 된다고 하면서 동 위원회의 농성장에 모여 있던 재향 군인 등은 울기도 하고 흥분하여 총영사에 대해서는 물론 해군 측을 마찬가지로 비난하기도 하였다. 그러던 가운데 해군측이 끝까지 예정대로 행동을 단행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구락부인들의 소요는 일변하여 만세의 소리로 일변하였다. >---- >62호 전보 >육전대는 함대 본부와 의견이 종종 달랐으며 더욱이 청년 장교 중에는 혈기왕성한 자들이 많았다. (...) 재류민의 행동을 보면 극단론만을 여전히 강행해야 한다는 무책임한 언동이 모두를 지배하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28일 중국측과 타협이 성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야밤에 군사 행동을 일으킨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 >---- >63호 전보 이는 책임이 일본 측에 있다는 것을 정확히 꿰뚫은 판단이었다. 그럼에도 시게미쓰 공사는 '''즉각 육군을 파병'''해야 한다고 요시자와 외상에게 건의했다. 요시자와 외상 역시 1월 30일 육군대신 및 해군대신과 논의하여 육군 출병을 결정했으며 2월 2일 각의에서 승인했다. 요시자와 외상은 외무성이 육군 파병에 찬성한 것에 대해서 육군이나 해군의 압력이 아니었음을 적극적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1월 31일에는 요시자와 외상이 영국, 미국, 프랑스 3국 대사를 각각 불러들여 "우리 육전대는 방비를 위해 배치되어 있었는데 중국측으로부터 발포가 있어 이로 말미암아 응전한 것으로 완전히 자위를 위한 행동에 지나지 않는다."고 변명했다. 그리고 기자회견에서도 "중국 측이 돌연 사격을 개시하였기 때문에 우리 군은 자위상으로 응전했던 것이다. (...) 만약 중국 측이 끝까지 이러한 공격을 중지하고 철병에 응하지 않을 경우에는 일본으로서도 육군을 파견하여 중국 측의 공격에 대비하여 제국신민과 공동조계의 안전을 위해 끝까지 노력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상의 정황은 일본 외무성이 과거 만주사변 당시의 시데하라 외상 휘하의 외무성과 달리 침략에 적극 호응하고 오히려 확전하는데 조력한 증거라 하겠다. 하지만 일본의 이러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1월 31일 미국 대사 네빌은 "일본 육전대는 28일 야간에 상하이 상업지에서 중국군에 대해 공격을 개시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상하이 전시의 평화는 깨어지고 상업은 두절되었으며 공동 조계의 안전이 위협받게 되어 미국 정부로서는 이와같은 사태의 진전에 대해 망연자실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일본 정부에 대해 이와 같은 생명의 손실, 재산의 파괴 등 일체의 행동을 중지할 것을 요구한다."고 경고했고 영국 대사 린들레이도 본국의 훈령에 따라 항의했다. 이에 요시자와는 린들레이 대사에게 "우리 육전대가 매우 위험한 상황에 빠져있을 뿐 아니라 공동조계도 마차가지로 중대한 국면에 처해 있는 형편이다. 영국 측에 즉시 중국군이 증원을 중지하고 일정한 거리까지 퇴각하도록 상하이 주재 영국 관헌에게 필요한 훈령을 발동해줄 것을 의뢰한다."고 변명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